이순자 글

그리운 아버지

문똥이 2016. 11. 4. 20:54



     
네가 보내준 짧은 비데오 영상을 보며 앞으로 남은 날이 얼마나 주어졌는지 모르지만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더 충실하며 사람들을 신뢰 하지 않음으로 해서 오는 오해와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smart 해지고 마음이 더 넓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생긴 문제와 갈등을 만났을 때 그럴 수가 있나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이해심이 생겨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꽃들은 마치 발레리나들이 다양한 색깔과 홀, 겹겹의 형태로 만들어진 발레 옷을 입고는 가느다랗게 나온 꽃술이 다리가 되어 살아서 춤추는 요정들의 영상으로 나에게 닥아 와

 잠시 나마 마음이 즐겁고 행복 했었단다.
배경 음악은 처음 들어 보는 것인데 누가 부른 노래니?

나는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세계 문학 전집, 한국문학 전집, 위인전, 사상계, 삼국지 수호지까지도 두루두루 섭렵하며 읽곤 했지. 호기심이 많아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좋아했는데 

세월이 훨씬 지난 후에 우리 큰언니가 내게 들려준 말이 생각난다.

 
우린 형제자매가 여덟인데 딸 다섯 중에서 나만 뭘 배우겠다고 늘 아버지께 조르곤 해서 더 예뻐 하셨다고 그러더라구. 지금도 기분이 좋으시면 휘파람을 부시고, 가고파라는 노래를 부르시며, 토스카의 별은 빛나건만 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모습이, 장기를 둘 때 장군이야 멍군이야 하시며 일부러 져주시어 이긴 것을 기뻐하는 나의 행동을 바라보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순자야아아" 라고 크고 다정하게 부르시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기도 하고 말야. 가끔 이 두 곡이 어디 선가 들려 올 때면 아버지가 생각나며 그 시절이 그리워진단다. 

내가 미국서 남편이 박사 과정시절일 때 신혼 시절을 East Lansing에 있는 미시간 주립대학에서 보냈는데 아버지가 Ann Arbor에 있는 University of Michigan에 교환교수로 오셨었어. 그때 나이아가라 폭포로 함께 여행도 다녀오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었지. 시카고 비행장에서 손을 흔들며 헤어지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나의 가슴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고, 헤어진지가 엊그제 같은데 

그때 울 아버지 나이가 지금의 우리 나이보다 훨씬 젊은 53세 였지 아마? 
그 후 60세에 환갑 생신 몇일 전에 뇌출혈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한국에 장례식도 못가고 이별을 하게 되어

 아직도 아쉬움이 남아 있고 그 당시에 애끓다는 말을 처음 경험해 보았단다.

난 이제야 시간이 조금 나는 것 같아 요즈음 중국말도 배우고 건강 요리도 일주일에 한 번씩 가서 배우며 

아크릴 반이나 사진반에도 등록 하려고 생각중이야.
그간 난 직장 생활도 하고 비지네스도 하고 손주가 다섯 살 될 때까지 봐 주기도 해서 좀 바쁘게 지냈었거든.
오늘도 승리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면서... 건강하게 잘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