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똥이의 시
- 녹원사의 추억 - 나는 녹원사 자치위원장이었다. 사감이신 이양후 교수님의 지도 아래 취사를 담당하는 재기, 서기와 회계를 담당하는 민자, 셋이서 기숙사를 이끌어 갔다. 우리의 먹거리는 재기가 훌륭하게 해주었다. 민자는 회계처리와 서기 일을 빈틈없이 야무지게 해 자치위원장인 나는 크게 할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런대로 일이 있었으니 그 때는 형광등이 아주 잘 나갔다. 하지만 일일이 학교에 부탁 할 수도 전기수리공을 부를 수 없어 왠 만한 일은 혼자 해결 했다 나는 시장에 가서 형광등, 스타트와 이름이 뭔지 지금은 잊었지만, "아,그게 안전기 였던가" 아무튼 넙적한 부속품을 사다가 천장에 매달려 일일이 고치곤 했으니, 난 어엿한 전기 수리공 이였던 샘이다. 나는 훌륭한 화장실 수리공이기도 했다. 그땐 화장지가 귀한 때 여서 폐지인 누런 종이를 잘라 메달아 놓고 썼는데 화장실, 이게 툭하면 막혀 버려 나를 곤혹스럽게 했다. 그 때마다 또 인부를 부를 수 없으니 나는 밖에 있는 정화조로 가 기다란 작대기로 휘휘 저으면 펑 뚫리곤 했다. 더러 본 친구가 있을 진 몰라도 아마도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씨름했던 나를 대부분은 모를 것이다. 어쩌다 말 주변도 없고 나서기 싫어했던 내가 자치위원장이 됐으니 한달에 한번 하는 생일잔치의 사회가 고역 이었다. 그 때마다 친구들이 사회를 잘 봐 늘 생일잔치도 재밌게 보냈고 가끔 우의를 돈독히 하는 의미에서 상록사 자치위원들과 모임도 가졌다. 그런데, 여름방학 기숙사를 지키고 있을 때 였다. 밤중에 기숙사를 온통 울리는 쾅, 쾅 하는 소리에 오금이 저려 카운터에 있는 전화 걸러 나가는 것도 무서워 민자와 도우미 언니 와 나 셋이 한방에 모여 꼼짝도 못한 체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완전히 날이 다 센 다음에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복도 끝 문과 방문이 두개나 뜯겨져 있었다 이불 보따리와 옷가지들이 없어졌는데 그때 그 공포, 무서움이란 한동안 꿈속에서도 나를 괴롭혔다. 겨울방학 땐 아침에 자고 일어나 식당엘 가보니 도둑이 식당 창살을 뜯고 쌀 두가마니를 훔쳐갔다. 리어커로 끌고 간 자국이 뚜렷이 나 있어 신고도 해 보았지만 잃어버린 것으로 그만 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가 이불 훔쳐가는 도둑이 있었을 거라는 것을 지금은 아무도 생각 못 할 것이다. 그 때는 60년대 였으니... 이리하여 나의 녹원사 자치위원장으로서의 생활은 형광등 고치기, 막대기 휘젓기, 그리고 생일잔치와 도둑사건으로 끝났다. 2008. 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