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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年作 薛涛制笺图 立轴 纸本 唐代聲名最盛的女詩人
春望詞
《春望詞》是一首五言古體詩,是唐朝女詩人薛濤所作,以四首聯章形式,抒寫眺望春景,卻心生複雜愁情,表達了詩人傷春之感相思之情。
作品原文
花開不同賞,花落不同悲。
欲問相思處,花開花落時。
攬草結同心,將以遺知音。
春愁正斷絕,春鳥複哀吟。
風花日將老,佳期猶渺渺。
不結同心人,空結同心草。
那堪花滿枝,翻作兩相思。
玉箸垂朝鏡,春風知不知。[1]
這首《春望詞》寫于薛濤隱居浣花溪時期。此時,她雖剛年過三十,卻已飽經人生滄桑。十二年屈辱的樂伎生涯中,她曾被罰往荒蠻邊關,也曾擁有過節度府校書郎的尊貴地位。在終于脫離了樂籍恢複了自由身後,她一身素淡的女冠服,在浣花溪畔開始了新生活。本該是高興的事,但是若無那有情人分享,便成了那“空谷幽蘭”“棧橋梅花”只能孤芳自賞,活脫脫透著一股淒涼。
作品賞析
薛濤,768~832,字洪度,唐朝長安人,生于大曆五年,卒于大和六年。
幼年隨父鄖流寓成都,八九歲能詩,父死家貧,十六歲遂墮入樂籍,脫樂籍後終身未嫁。後定居浣花溪。
知音律,工詩詞。創“薛濤箋”。薛濤正式集子叫《錦江集》,共五卷,詩五百余首,沒有流傳下來。後世各家所本的明本《薛濤詩》一卷,是從《萬首唐人絕句》等選本拼湊起來的。
薛涛制笺图图片
춘망사(春望詞)
- 봄을 기다리는 노래 -
설도(薛濤)
一.
花開不同嘗(화개보동상) 꽃이 피어도 같이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화락부동비) 꽃이 떨어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相思處(욕문상사처) 임이 생각하는 곳은 어디 메 일까?
花開花落時(화개화락시) 때 맞춰 꽃들만 피고 지는구나!
二 .
攬結同心草(람결동심초)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묶어
將以遺知音(장이유지음) 내 노래를 아시는 님에게 보내야 겠다.
春愁正斷絶(춘수정단절) 봄날의 시름은 이렇게 끊어 버렸지만
春鳥復哀吟(춘조복애음) 봄새는 또 다시 슬피 우네요.
三.
風花日將老(풍화일장노) 꽃은 바람에 매일 시들어 가고
佳期猶渺渺(가기유묘묘) 만날 기약은 오히려 아득하기만 하니
不結同心人(부결동심인) 마음을 같이 묶지를 못하고
空結同心草(공결동심초) 헛되이 풀잎만 묶었구나.
四.
那堪花滿枝(나감화만지) 어찌 견디리 꽃이 가득 핀 나뭇가지
翻作兩相思(번작양상사) 오매불망 님 생각에 괴롭기만 하다.
玉箸垂朝鏡(옥저수조경) 아침거울에 떨어지는 옥 같은 내 눈물
春風知不知(춘풍지부지) 봄바람은 내 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우리나라에 여류시인으로서 "황진이"가 있다면 중국에는 당나라때에 기녀로서 여류시인 설도(薛濤790-832)가 있었다. 설도의 자는 공도(洪度) 어렸을 적부터 시문(詩文)에 재능이 뛰어났었다.
설도는 실연한 사연으로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비분상심의 감정을 붓끝에 모아내어 시를 썼다.
도교의 사제로 불리웠던 그녀는 명문가의 후예였는데 선조는 당나라의 측천무후(則天武后) 시대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우리에게는 원한이 맺혀 있는 설인귀(薛仁貴)라고 전해온다.
그녀의 생몰 연도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지만, 두보가 죽은 해에 그녀의 나이는 서너 살 정도였다.
원래는 장안(長安) 출생이었지만, 사천성 성도(成都)의 자사(刺史)로 부임한 부친 설운(薛郧)을 따라 성도에 와서 살게 되었는데, 부친은 반란을 진압하는 도중에 전사하게 되고, 곧 이어 모친도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아무데도 의지할 곳이 없게 되고 먹고 살길이 막막해진 그녀는 결국 악기(樂妓-기예(技藝)는 팔아도 몸은 팔지 않는 고급 기녀)가 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당대의 보기 드문 재녀(才女)였는데, 음률과 시, 서예에 조예가 깊었을 뿐만 아니라 용모 또한 매우 뛰어났다. 그녀에 얽힌 전설 같은 사랑이야기도 유명하다..
그 당시 사천절도사 위고(韦皋)라는 사람은 그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를 자신의 교서랑(校書郞)이라는 직에 임명하려 하였는데, 여자에게 일찍이 그런 예가 없다며 반대하는 부하들 때문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그녀의 재능을 흠모한 백거이(白居易), 원진(元鎭), 유우석(劉禹錫), 두목(杜牧) 등과 같은 당대의 거장들과 교류했다. 특히 원진과의 정분은 각별했다.
원진은 장래가 촉망되는 당대의 시인으로서 사천감찰어사로서 성도에 오게 되었는데, 설도는 나이가 자신보다 10살이나 연하인 원진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아내가 있었던 원진(元鎭)은 설도와 며칠을 함께 지낸 후, 배를 타고 떠난 후 다시 찾지 않았다. 그 후 설도는 평생동안 독신으로 지냈다.
원진은 원래, 부친을 일찍 여윈 명문가의 미녀 최앵앵(崔鶯鶯)과 혼약을 정했으나 언약을 저버리고 장안의 권세가의 규수에게 장가를 들었다.
(이 이야기는 원진 스스로 쓴 당대의 유명한 소설 앵앵전(鶯鶯傳)에 실려 있는데, 앵앵전은 훗날 서상기(西廂記)라는 희곡의 주제가 되었고, 또 서상기는 우리나라의 춘향전(春香傳)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원진은 또, 당시 절강성 소흥의 유명한 명기였던 유채춘이라는 여자를 농락하여 자살토록 한 바도 있었으며, 그러고도 결국 재상의 딸과 결혼하여 출세한 인물인데 그러고도 설도를 만나 장래를 약속했다.
설도는 원진에 대한 그런 좋지 못한 그런 소문을 전해 듣고는 결국 그를 단념하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그녀는 머리도 몹시 영리하여 설도전(薛濤箋)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종이도 발명하기도 하였다. 당대의 사람들은 백지(白紙)에 시를 써서 사람을 전송하는 것을 불길하다고 여겨 색깔있는 시전(詩箋-시 한 수나 간단한 사연을 쓰는 폭이 좁은 종이)이 성행했는데 설도는 완화계의 자신의 집 근처의 종이 공장들을 늘 살펴보고 연구하고는, 꽃물을 넣은 붉은 색의 아름다운 색종이를 만들어 자신의 시를 적어 사람들에게 보내곤 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그것이 몹시 청신하면서도 아름다워 설도전이라고 이름 짓고 다투어 소장하려고 하여 몹시 귀하게 되었다. 그 후로 황실에서도 사들이는 진품(珍品)이 되었다.
청대에 이르러 설도의 슬픈 사랑과 넋을 기리기 위해 그녀가 살던 곳에 망강루(望江樓)라는 누각을 세우고 그녀가 좋아했던 대나무를 심었다.
지금도 성도의 망강공원(望江公園)에 가면, 그녀가 설도전을 만들 때 물을 길렀다는 설도정(薛濤井), 설도전을 만든 현장인 완전정(浣箋亭), 그 다락에 기대어 시를 짓고 설도전에 옮겼다는 강변의 음시루(吟詩樓) 초석이 있으며 그녀의 시(詩)에 자주 나오는 대나무 1백40여 종이 숲을 이루고 있다.
출처 : 열국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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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花開不同賞 (화개불동상) : 꽃 피어도 함께 즐길 이 없고
花落不同悲 (화락불동비) : 꽃 져도 함께 슬퍼할 이 없네
欲問想思處 (욕문상사처) : 묻노니 그대는 어디에 계신고
花開花落時 (화개화락시) : 때맞쳐 꽃들만 피고 지네
(二)
攬草結同心 (람초결동심) : 풀을 따서 한마음으로 맺어
將以遣知音 (장이유지음) :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는데
春愁正斷絶 (춘수정단절) : 봄 시름은 속절없이 끊기고
春鳥復哀吟 (춘조복애음) : 봄 새들은 다시와 애달피 우네
(三)
風花日將老 (풍화일장로)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佳期猶渺渺 (가기유묘묘) :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不結同心人 (불결동심인) :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결동심초) :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랴는고
(四)
那堪花滿枝 (나감화만지) : 어찌 견디리 가지 가득 핀 저 꽃
煩作兩相思 (번작양상사) : 괴로워라 사모하는 마음이여
玉箸垂朝鏡 (옥저수조경) : 눈물이 주루룩 아침 거울에 떨어지네
春風知不知 (춘풍지불지) : 봄바람은 아는지 모르는지
춘망사(春望詞) : 봄을 기다리는 노래
- 설도(薛濤) : 당나라 중기의 여류 시인. 자는 홍도(洪度).
장안에서 태어났으나 아버지를 따라 촉의 성도에 옮겼고 詩作에 능했는데 붉은 종이에 글을 써서 설도전(薛濤箋)이란 유명한 종이 이름이 되었고 그녀가 설도전을 만들던 설도정(薛濤井) 유적이 성도의 망강고원 안에 있다. 450여편의 시를 썼고 현전하는 것은 90수, 모두 주옥 같은 시다.
- 일장로(日將老) : 해가 기울려 하다. 해가 지려 하다.
- 가기(佳期) : 좋은 시절, 즐거운 약속
- 유(猶) : 오히려
- 묘묘(渺渺) : 아득히 먼 모양, 멀고 먼
- 동심인(同心人) : 마음을 같이 하는 사람. 연인
- 공(空) : 헛되다.
- 결동심초(結同心草) : 풀잎을 동심결(同心結)의 형태로 묶다. ‘동심결’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영원히 하나로 맺는다는 뜻이다.
결동심(結同心)은 중국 고대에 사랑하는 남녀가 사랑의 징표로 비단띠를 허리에 두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부르는 ‘동심초’라는 노래는 시인 김억(金億)이 이 시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시는 총 4수로 되었으며, 소개하는 부분은 제3수이다.
많은 사람들이 설도의 춘망사는 몰라도 김억의 동심초는 알고 있으니 요즈음 하는 말로 ‘오리지널’은 몰라도 ‘짝퉁’은 알고 있는 셈이다.
출처 :
http://kma21.net/xe/culturenart/7346
https://kknews.cc/history/vmabgz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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