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옥아!
보내준 영상 잘 받아보았겠지? 함종희가 석희한테 보낸 것을 나에게 보내준 것 인데 너는 이미 받아보았는지 모르겠네.
보고 듣는 동안 내 기억의 회로 속에 묻혀 있었던 과거 기억의 편린들이 하나씩 떠오르면서 잠시나마 꿈 많았던 세라복의 단발머리 시절로 돌아가 즐거운 상념에 젖어본다.
일찍이 선구자적 정신으로 여성교육에 앞장서온 백십 년의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이어받아 최근까지도 여러 곳에서 주최한 남녀 일반고 종합평가에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숙명의 딸들이 자랑스럽다.
학교의 교훈처럼 맑고 밝은 여성으로 살며 사회 곳곳에서 영란화의 그윽한 향기를 발하는 빛의 딸들이 되기를 우리 모두 기도하자.
영상의 장면처럼 앞면이 온통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고풍스런 중학교 건물에서
ABC를 배우던 시절이 생각나며,
학교 강당에서는 조회 때 마다 함께 모두가 교훈을 합창으로 외치던 우리들, 열띤 반 대항 합창 경연 대회와 멎진 음악실, 특히 음악 선생님이었던 금난새 선생님이 주연한 오페라 토스카 "별이 빛나건만" 을 보고 감동을 받아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꿈꾸었던 일이 있었지.
잘 구비된 도서실을 들락거리던 일, 매년 여름이면 학교 교정 한 켠에 있는 등나무에서 아름다운 보라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었고 학교 교정에서는 조회 시간에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보건체조를 하며 또한 배구, 탁구, softball등을 배우던 시간이 생각나네.
김찬삼 여행가의 이야기를 들은 후 갖게 된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설레임, 신나는 경주 단체 수학여행, 특강을 해주신 이희승 선생님의 국어사랑 강의, 율동시간에 우리들이 바른 자세와 걸음걸이를 갖게끔 하기위하여 마루위에 길게 쭉 그어 논 줄 위에서 똑바로 걷도록 호통(?)을 치시며 열심히 가르쳐 주셨던 율동선생님 등도 새록새록 기억나고.
또 생각이 더 난다.
점심시간에 겨울이면 난로에 올려 논 도시락속의 김치가 김치찌개가 되 버려 온통 그 냄새 때문에 문을 열고 들어 오시자마자 코를 찡그리시며 창문을 열라고 하셨던 어느 선생님의 얼굴 표정 등등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구나.
마루바닥을 걸레 잡은 두 손으로 주루룩 밀면서 두발로 기어가며 걸레질 하던 일,
학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어느 땐 등교시간 학교 문 잠기기전 늦을 새라 학교 근처 버스 장에서 내려 헐레벌떡 뛰어 가던 별로 달갑지 않은 일도 생각나구.
인생의 늦가을에 서 있는 우리가 여학교 시절을 크게 누리었다는 것을 그때는 잘 몰랐었지.
지금 와 생각하니 가슴이 애련해진다.
참 우리 친정할머니도 약 100년 전 숙명을 제 2회인가 3회인가에 졸업 하셨다 는데 그때는 우리 때와 모든 것이 많이 달랐겠지?
앞으로 100년 후에 숙명의 모습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