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1
나는 어려서부터 조용했고 말이 없었다.
대신 남이 말 할 때 주의 깊게 듣는 편이었다.
지금은 모임을 어쩌다 가지지만
대학친구들, 기숙사에서 4년을 함께 밥 먹고 지낸 우리는
설흔 살 전부터 애들 출가시키기 전까지는 쭉 모였다.
우리는 잡담 보다는 비교적 인생살이에 관한 토론 비슷한 것을많이 했다.
친구들은 자기의 의견과 생각을 잘 표현해 듣는 쪽인 나는 늘 속으로 감탄 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난 이야기를 잘 못한다고 하니
친구는 나보고 너는 요점, 즉 핵심만 짚어 말을 잘 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마디 툭 하면 친구들은 그 말에 웃으며 엉뚱하다고 했고, 나는 길게 한참 떠드는 친구를 속으로 얼마쯤은 지겨워했다.
그래서 “넌 요점만 짚어 말을 잘 해” 그 말을 그 후부터는 믿기로 했다.
자기가 정한 틀에 갇혀서 스스로 낮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 조금은 수다스러워 졌지만, 아직은 남의 말을 잘 경청하는 편이다.
자매간에 얘기 할 때 아직도 지적 받는 “결론만 얘기해” 하는 이 버릇은 고쳐야 겠지만....
내 모습 2
나는 특별히 무엇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재주가 많으면 그 기술을 써먹는 팔자가 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 이 머리 속에 남아 있었다.
무엇 하나 잘 하는 것 없어도 “파고들었으면 무엇이든지 잘 했을 거다” 당당하게 말 하면서 내 재주 없음을 별 신경 안 썼다.
그리 생각한 것은 내가 평탄 하게 살아 그랬을 지도 모르겠다.
평탄 하게 살았다는 것에는 내 성격도 한몫 했다고 본다.
부에 대한 척도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잘 사는 것에 대해 그리 샘내거나 아등바등 하지 않았다.
주위 분들에 일일이 샘을 내고 질투심에 싸였다면 결코 평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 남편이 좋아하는 말이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것 이 편하게 사는 것임에 일찍부터 도가 텄나보다.
언니는 내가 너 였다면 재테크 하는데 신경 썼을 거라 말 했다.
그러나 재산을 향에 달려갔다면 잃은 것은 없었을까.
틀림없이 무언가는 잃었을 거고, 그로 인해 마음고생은 오죽 했을까 생각해 본다.
삼십대 중반 인생에 대해 회의가 들어 잠깐 우울하기도 했다.
남편은 사회생활에서 위치가 공고해 지고, 친구들은 대학에 교수로 자리 잡았다.
대학에 갈 때는 졸업 후 교수가 되겠다고 생각 했었는데...
사회생활만이 자기 발전에 전부는 아니지 하며 곧 이 생각에서 벗어났다.
동생은 나에게 언니는 자존심이 아닌 자존감이 높다고 한다.
듣기 좋은 말 이다. 스스로 높인 다는 것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내 모습 3 초등학교시절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부터 그 후 보통 읽어야 될 필독서들은 읽었지만, 문학책 보다는 수학, 물리, 천문학 등에 관한 가벼운 과학 책들에 더 흥미가 있었다. 뭐 하나 심도 있게 읽은 것은 아니 였으니, 똑 부러지게 말 할 수 있는 지식은 없다. 그래도 신문의 과학 기사는 열심히 읽는다. 나는 일찍부터 클래식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부엌에서 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늘 콧노래가 떠나지 않았다. 오랫동안의 버릇이었는데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콧노래가 사라졌다. 마음이 강팍해 졌나보다.
방콕이라는 별명아닌 별명을 들을 정도로 나가기 싫어해 어느 때는 클래식 CD판을 아침부터 8, 9장 내리 들을 때도 있다. 지금도 돌아다니기 싫어하는 것은 여전하다.
내 모습 4 나는 애들이 장가가기 훨씬 전부터 후에 손자 손녀를 내가 키워 주겠다고 말 했다. 그 것도 아주 기꺼이. 물론 며느리가 아이를 돌볼 형편이 안 될 때 말이다. 작은 며느리는 홍콩에 있으니 해당 무(無). 큰 며느리는 집에 있으니 그 것도 해당 무(無). 헌데도 남편은 손자 돌보지 않는 다고 성화. 어미가 있는데 무슨 소리냐고 말 한다. 내 손이 별로 필요치 않음에도 가까이 있는 손자 내가 즐겨서 틈틈이 돌봐 주었다. 나는 애들 눈높이에 맞춰 아주 잘 놀아 준다. 이젠 다 커 버려 저들대로 바쁘니...
내 모습 5 나는 서울 한 복판 종로3가에서
해방 6개월전에 태어나 다 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8남매 중 4번째 둘째 딸로 고생 모르고 자랐다. 부모님은 자식들 키우느라 고생 하셨을지는 몰라도. 해서 드라마에 나오는 어려운 시절의 얘기는 사실 잘 모른다. 어렸기 때문에 주위에 그렇게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는 것도 몰랐다. 다 우리 같이 사는 줄 알았다. 어려웠을지라도 내 눈에는 다 똑 같이 보였을 테니까. 같은 환경에서 자란 형제 자매간이라도 인생길은 각자였다. 형제 중에도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상 풍파 모르고 살았다. 나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내 인생의 어려움을 말 하라면 크게 손꼽을 것이 없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수시로 일어나는 일에 어찌 어려움이 없었을까마는... 2008.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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